나는 시민인가?

국가를 스스로 선택하고 문화적 기반을 만들며 견제할 수 있는 주체적 인간으로 되야

 

 

나는 시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하려고 한다. 세월호 사건이 지시하는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했는데, 그 가슴 아픔의 근원을 단순히 휴머니즘적 감정으로 치부하는 것 이외에, 사회학적으로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말하고 싶다. 아이들을 두고 도망치는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사진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사회에 결핍되어 있는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이때 핵심 개념이 바로 시민이다. 국민이 국가와 맺는 수직적 관계에서 출발한다면, 시민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은 개인이 국가에 대해서 맺는 관계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바로 국가의 목적에 개인이 헌신하며, 그 대가로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함의가 있다. 하지만, 국민 의식 속에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하는 자율성이 빠져있다.

 

한국의 자화상을 우리 스스로가 보고 느끼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이준석 선장은 나이 68세의 비정규직 선장이다. 배가 뒤집히고 아이들은 갇혀 있는 상황에서, 해군의 구조정을 보고 '국가가 와 있다, 국가가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하고 이준석 선장은 생각했을 것이다. 즉, 국가가 와 있기 때문에 내가 더 할 일 은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구출된 후에도, 아이들이 빨리 구출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대통령은 '국가 개조'를 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좋은 뜻에서 한 말이었겠지만, 이 단어는 사실 파시즘적인 단어이 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 시민 사회에서 불거지는 수많은 말과 상황들을 그저 혼란으로 치부하고 해결할 문제로 생각했기 때문 에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가 맞물려 있는 한국 사회에 사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국민으로서의 수동성이 자리 잡아 있을 것이라 고 나는 추측한다. 시민으로 하여금 국가 의 목적에 봉사하라는 목적을 부여하고 여 기에 종속되면 국민이 된다. 20세기는 국민의 시대이며, 제국주의, 다시 말해 유럽 의 국가관이다. 유럽은 산업 혁명을 통해 서 100여 년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를 이 미 형성한 채 유지되었다. 정부가 작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민으로 살아가다 보면 다른 시민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들은 자연스럽게 습득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를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문화적 기반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며, 견제할 수 있다는 주체적 인간이 바로 시민이다. 또 하 나의 단적이 예로, 시민이라는 개념을 놓고 미국과 우리나라를 단적으로 비교해 보면, 미국의 대통령은 "Dear American Citizens"라고 하고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한다는 점 에서 그 차이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시민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알 아서 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갈 시간을 갖지 못했다. 경제는 시간단축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는 뛰어넘기가 불가능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1910년대에 시민 의식이 싹틀 때, 황국시민으로 가득한 일본이 우리나라 의 자율성을 짓밟았다. 우리나라의 20세기 는 이런 무자비함 속에서 출발했다. 이 당시 자치 의식은 개인들이 가족의 생계 문제를 떠나서 공적인 문제에 접근할 때, 예를 들어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일제에 대응 할 때 잠시 빛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방송사와 함께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서, 일본 자위대의 공군 관계자를 만 나 물었다. 위안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그는 매춘이다, 라고 대답했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그는 당신은 경성제국대학의 교수가 아닌가, 일본이 조선을 내지 수준의 생활수준으로 끌어올렸을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내가 이어 난징 대학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묻자, 그는 전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며 사망자의 수가 날조된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었지 만 그 분노는 '황국신민'으로 철저하게 교육된 그에 대한 동정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당시 일본의 국민성에는? 전 이후 재판에서, 군부는 천?? 수많은 학살의 책임을 공중으로 분해시켰다. 일본의 권력자들은 천황이라는 종교를 가 져와 자신들의 모든 목적의 정당화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야기를 돌려, 최장집 교수와의 대담 을 통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 국가 역할의 외주화이며 이로부 터 비롯된 책임의 소멸이다. 숙고되지 않은 민영화는 재앙을 낳는다. 둘째, 한국의 위험사회화이다. 그리고 이 위험은 저소득층과 같은 약자에게 집중된다. 셋째, 비정규직의 양산이다. 복지 제도가 약자를 무시하게 정립되고, 시민과 정부의 윤리의식 은 소멸된다.

시민성의 핵심은 공존이다. 1987년 이후부터 시민성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기 시 작했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대학생은 공부만 하고, 성인은 술만 마신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공통 쟁점을 가지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영국 의 대학생은 70%가 시민단체에 가입한다. 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 전에 대학생들은 사회를 알고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배층은 텅 빈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일제에 짓밟히고, 군부에 짓밟히고 지금은 오직 그 빈 공간을 선점하기 위해 서로 싸우기만 하는 실정이다. 우 리가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에 대한 공유 코드를 설립하지 않은 채, 지배층은 계속 세습 자본을 늘려가고 선점한 위 공간에서 사다리를 치워버린다면, 건전 한 시민을 만들어 갈 역량은 만들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