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 엘리시아 리조트에서 열려

 

한 끼의 밥을 집안에서 먹으면 아침, 점심, 저녁이 되지만, 그걸 싸 들고 산으로 들로 가면 소풍이 되고 여행이 된다. 장소를 옮겨 놓으니 매주 목요일 밤, 강의실에서 갖던 시간이 세미나가 되고 여행 이 되고 새로운 경험이 되고, 다른 모습의 만남이 된다.

 

최고위정책과정 56기 원우가 함께 계획한 국내 세미나는 개최 장소를 여수냐 부산이냐 하는 논의 속에서, 최종적으로는 가깝지만 아주 가깝지는 않게 또 멀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차로 급한 일 을 처리하고 합류하든가 세미나를 마치고 다시 급한 일로 돌아갈 수 있는 강촌 엘리시안에서 갖게 되었다.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세미나 장소 마련에 애써주신 최형태 원우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멀리서 진행되었다면 참석하기 어려웠던 원우도 참여하여 총 20 명이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럼에도 강의가 약속되어 있어서 혹은 사 무실에 급한 일이 있어서, 또 가정에 피치 못한 일들이 있어서 참석 하지 못한 원우님도 많았다. 늦게 합류하거나 일찍 귀경을 한 원우님도 있었다. 그러나 아쉬움은 다음의 좋은 기회를 새로 만들기로 하고 참석 가능한 사람들로만 세미나를 꾸렸다. 시간은 5월 9일 토요일 저녁 7시에 시작하여 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 2시에 마치는 일 정으로 계획하였다.

 

이번 세미나는 공무원인 원우가 발표하는 것으로 하고 민족의 소망 통일과 시민의 소망 일자리를 주제로 통일부 정준희 국장님과 서울시 일자리정책과장인 내가 맡게 되었다. 이 두 소망은 늘 소망 하되 정말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이 시대의 중요한 관심 사이기도 하고 또 모든 사람들이 집중하여 노력할 사항이라는 점에 서 마땅한 주제라 생각되었다.

 

각자 다 답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고, 또 많은 문제들을 몸소 겪어 보신 분들이라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준희 국장께서 말씀하신 "통일에 대한 전망과 북한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평소에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주제인데다 실제로 직접 업무를 담당하는 분에게 듣게 되는 것이라 매우 의미가 있었고 통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일자리는 우리 주변에서 늘 이야기되고, 또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듣지만 그 또한 쉽사리 묘답을 찾아낼 수는 없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일자리 정책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많은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일자리 정책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자리 수단은 크게 성공적이지 못할 수 있고 보조금이나 인센티브에 의존 하는 일자리는 일정한 함정에 빠지게 되는 악순환도 고려해야 할 것 이라고 내가 답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 이라는 것도.

 

통일과 일자리에 대해서는 강의실에서도 깊이 다시 한 번 이야 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길 기대한다. 그것이 이 시대 민족의 소망이 며 시민들이 가장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알아야 할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성공한 분들이고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하신 분들이 지만 학동시절이나 최고위정책과정을 듣는 지금이나 역시 공부는 꼭 필요하지만 힘든 일이고, 공부 후에 따르는 담소와 즐거운 시간 들은 더 달콤했다. 그래서 세미나 후 교류의 시간이 조금은 더 활기차게 보였다.

 

그 근엄하신 분들이 이렇게 유쾌하고 즐거운 분들이었다니? 세미나를 마친 후 간단하게 마음 풀기 시간에 갖게 된 노래방에서의 모습은 "아! 우리 모두 학창시절에는 내로라하는 가수(?)였고, 댄서 못지않은 춤꾼이었으며, 기꺼이 몸 던져서 남들과 스스로를 즐겁게 하던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목을 가다듬어 노래 불러주신 모든 원우님의 열정과 유쾌함이 우리가 일궈온 한 시대의 원동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원우님 모두는 아침형 인간이셨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음 에도 아침 일찍 산행하는 자리에 한 분해서인지 어떤 분은 너무 편한 신발을 신고 오셨고, 어떤 분들은 마음을 너무 편하게 갖고 참석하셨다. 그래도 540미 터의 2킬로 남짓한 산행이므로 동네 뒷산 오르는 마음으로는 어려 운 산행이었다.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산길을 도상으로만 확인했던 터라 그다지 고될 것 같지 않게 느껴져서 어렵지 않다고 했는데, 역시나 산은 낮아도 산이었다. 산행은 결코 산책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힘들어지다 보니 정상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상까지 갈 것인 가 말 것인가를 두고 눈감고 거수하기 찬반 결정도 해보았지 만 아주 소수만 정상까지 간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한다면 하는 사람. 찬성의 수가 더 많아질 때까지 손들게 한 후 결국은 정상을 올라갔다. 사실 이게 투표의 실 체. 사실은 끝까지 찬성하는 사람이 과반을 넘지 못하였다. (시민들이여 결코 눈감고 투표하지 말기를…)

 

결과적으로 정상을 올라 간 사람 모두 결코 후회는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정상에서 보는 것은 아래에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주변의 높은 산들이 어떻게 둘러싸고 있는지, 또 올라온 길은 어떻게 되었는지. 산 아래 마을들은 어떻게 들어 앉아 있는지. 고속도로는 어떻게 지나가고 철길은 어떻게 달려 가고 있는지. 높은데 올라가면 훨씬 잘 보인다. 우리가 모 두 자기 삶에서 어느 정도의 정상을 오르려 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내가 살아 온 삶의 굴곡과 힘겨움 그리고 살아온 나날들의 고통과 즐거움. 이 모든 눈물과 희열이 모두 다 내려다보이고, 높이 올라서 보면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하나하나 힘들던 것과는 다른 모습임을 보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정상에서는 바람도 더욱 시원하고 햇살은 더욱 강했으며 녹색으로 물든 산의 아름다움 역시 달랐다. 우리가 오른 산은 540미터 고지의 산 이지만 결코 천 미터가 넘는 산보다 초라하지 않았으며, 그 안에 계곡을 품고 있었고,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으며, 수많은 종류의 나무를 기르고 있었고, 나무 아래 이름 모를 수많은 풀들을 자라게 하고 있었으며, 또 알 수 없는 수만큼의 곤충과 버섯과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이름 모를 산새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사방을 돌아보니 많은 산들이 있고, 우리가 오른 산도 좋았지 만, 다른 산들의 높고 낮음이 갖는 느낌도 달랐다. 아래에서 보면 높은 산 낮은 산으로만 보이지만 어느 산이든 정상에 올라 보면 높은 산이 높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정상에 이르면 다른 높은 것이 다만 높은 것이 아니라 다름의 높음임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어느 산이 더 높아서 존귀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산들과 어우러져 있어서 존 귀하게 보이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존귀함이 나보다 높고 귀해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사람들이 모 두 각자 삶의 정상들로 이루어져 있고 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있기 때문 에 각자 존귀하고 특별하다고 생각된다.

 

나의 삶에 대해서도 그 나름의 존귀함과 특별함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게 내 삶의 정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날이 그만큼의 정상이라 생각하면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갖는 무게와 존귀함, 그 특별함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그 나름대로 현재가 정점이다. 내일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내일 하산할 수도 있다. 누군가 말했다. 과거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은 것이며 가장 소중한 것이 지금이라고. 나는 지금 이 정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정상의 소중함을 함께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정상에서 바람도 시원하게 맞은 뒤, 하산 길을 대비하여 가볍게 몸도 풀었다. 이 어른들 좀 보소, 모두 빠짐없이 허리를 틀고 다리를 펴고 발목을 돌리고 목을 젖힌다. 너무나 모범생 같은 우리 56기 원우님…그러 나 평소에 몸을 유연하게 하는 운동을 더 하셔야 할 것 같다.

 

하산 길은 조금 더 위험했고, 미끄러웠으며, 오르는 길에 힘을 많이 써서 다들 다리가 풀려 있었다. 모두 조심조심 올라가는 길보다 더욱 힘 들여서 내려왔다. 산을 오르고 내려와 보니, 우리 원우님 모두는 이전까지는 동료였는데 이제는 가족이 되었다. 단지 540미터의 산을 함께 오르고 내려왔을 뿐인데….

 

산을 내려와서 가족이 된 56기 원우 모두는 함께 꿀맛 같은 닭갈비를 점심으로 먹었고, 그 때 나눈 이야기는 그전에 나눈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점심 식사 후 귀경길은, 이른 아침의 산행과 배부른 점 안전한 귀가가 걱정되었다. 모두 졸음과 끝내 싸워서 이기거나 잘 화해하고 안전하게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받고서야 나는 비로소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다.

 

고려대 정책대학원 56기 원우 가족 여러분, 자주 만나서 정 들입시다.